<연구의 배경 및 목적>
흔히 국제적 분쟁에 있어서는 당사자들이 계약 체결 단계에서부터 미리 전속적 국제재판관할합의 또는 중재합의(양자를 합하여 이하에서는 ‘분쟁해결합의’라고 한다)를 하여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막상 분쟁이 발생하고 나면 위와 같은 합의를 의도적으로 위반하거나 그 분쟁해결합의의 성립이나 유효성 또는 불명확성을 다투면서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법정지(보통은 자국 법원인 경우가 많다)에 소를 제기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특히 국제소송전략의 일환으로, 외국에서 소가 제기되었거나 소 제기가 임박한 상황에서 당사자 일방이 자국 또는 자기에게 유리하고 상대에게 불리한 특정 국가의 법원에 별도로 채무부존재확인과 같은 소극적 확인의 소를 제기하여 소송을 지연시키거나, 자국 법정이 제공하는 사실상의 우대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받아내려 하거나, 장래 외국에서 선고될 판결의 승인 및 집행을 차단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유럽에서 흔히 ‘이탈리아 어뢰 공격(Italian Torpedo)’ 또는 ‘어뢰소송(Torpedo Litigation)’이라고 부르는 소송전략의 하나로서, 이탈리아와 같이 소송 진행이 느리기로 유명한 국가의 법원에 선제적으로 소(주로 소극적 확인의 소)를 제기하여 상대방을 곤란에 빠트리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경우 만약 선행하는 소극적 확인의 소와 후행하는 이행의 소를 동일한 청구라고 본다면, 설령 이탈리아에서의 소송이 종국에는 국제재판관할권이 인정되지 않아 각하된다고 하더라도 그 때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후행 이행의 소가 중지되거나 각하됨으로써 상대방 당사자로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최근에는 다국적 특허소송에서 자신에게 보다 유리하고 상대방에게 불리한 법정지를 선택하여 선제적으로 소를 제기하는 보다 진화된 형태도 많이 발견된다.
실제로 국제적 분쟁에서 이와 같이 외국법원에서 소송을 제기 당한다는 것은 피소자로 하여금 응소로 인한 상당한 비용과 시간, 노력을 소비하게 만들고, 그 외에도 외국법 및 사법제도의 부지, 절차의 생소함, 승패의 예측불가능성, 지리적 거리와 언어 및 문화적 차이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 소송지연 및 정당한 권리 실현 지연 등으로 인한 물질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한다. 그밖에도 법정지가 달라짐으로 인한 절차적 차이(예컨대, 변호사 비용부담, 성공보수금, 법관의 질, 증명의 정도 및 방법, 증거개시제도, 배심제도, 금지명령 또는 보전처분 제도, 집행 절차 및 집행가능성 등에 따른 소송절차상의 차이) 및 실체적 차이(예컨대, 징벌적 손해배상 등 고액의 손해배상 가부, 특허침해소송에서 특허권자에게 보다 우호적인 태도인지 여부,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책임발생 요건과 증명책임의 차이) 등으로 인하여 불측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러한 부담은 때로는 기업이나 개인의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수준일 수도 있고, 그러한 부담 때문에 분쟁에 대한 법적대응 자체를 포기하거나,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화해에 응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기도 한다. 그 정도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이러한 ‘선제 어뢰공격’ 한 방으로, 당사자간 협상력(bargaining power)의 균형추를 일시적으로 흔들어 놓을 수는 있다.
이에 대한 상대방의 구제수단으로는 사후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입은 손해를 전보받을 수도 있겠지만, 사전에 이러한 악의적 시도를 차단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러한 선제적・적극적 구제수단 중의 하나로 영미법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제도가 바로 ‘Anti-suit Injunction’(이하 ‘소송금지명령’이라 한다)이다. 예컨대, 영국을 중재지로 하는 중재합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법원에 소를 제기한 경우 영국법원은 한국에서의 소제기를 금지하는 내용의 소송금지명령을 발령하고 있다. 현재까지 영국과 미국 등 여러 국가들에서 소송금지명령을 발령하고 있는 추세인데, 실제로 한국 당사자들이 한국법원에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였다가 영국이나 미국법원으로부터 소송금지명령을 당한 사례들도 있었다. 최근에는 Samsung v. Huawei 사건과 Apple v. Qualcomm 사건, Microsoft v. Motorola 사건 등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소송금지명령이 문제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사례들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소송금지명령을 발령할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국제적 분쟁에 있어서 한국법원이 외국법원에서의 제소를 금지하는 내용의 소송금지가처분 또는 그 본안소송에 해당하는 소송금지판결을 선고할 수 있을까? 혹은 한국 중재판정부가 그러한 내용의 임시적 처분 또는 중재판정을 내릴 수 있을까? 만일 가능하다고 한다면, 과연 어떠한 법적 근거로, 어떠한 요건 하에 그것이 가능한가? 그 효력 및 집행방법은 어떠한가? 거꾸로 외국법원 또는 외국 중재판정부가 한국에서의 제소를 금지하는 내용의 소송금지명령 또는 임시적 처분을 발령한 경우 그 효력은 어떠하고, 이를 국내에서 집행할 수 있는가?
이러한 논점들에 관하여, 종래에 외국에서는 영미법계 국가와 유럽국가들을 중심으로 하여 많은 연구자료 및 판례들이 나와 있는 반면에, 국내에서는 아직 단편적이고 개괄적인 연구자료들이 소수 나와 있고 그나마도 외국 사례에 대한 소개와 함께 한국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간략히 언급하는 정도에 그칠 뿐, 이론적인 근거와 요건, 효력, 준거법, 집행 등을 소송금지명령의 각 유형별로 정치하게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연구자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하급심 판례까지 포함하여도 아직 이에 관한 판례가 발견되지 않는다.
본 논문은 국제적 분쟁에서 소송금지명령의 한국 내 활용가능성에 관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정치한 분석작업을 시도해 보고, 무엇보다도 한국법상 그것이 가능할 이론적 근거 및 구체적 요건론의 시론적 모색과 이에 부수하는 쟁점으로서 효력 및 집행, 준거법 등의 국제민사소송법적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규명해 보기 위한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이를 통해 국제적 분쟁에서 종종 이슈가 되는 소송금지명령이 국내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형상화 해보고 나아가 이를 기초로 현재의 국제거래 실무와 세계적 동향 하에서 한국 당사자들이 취해야 할 대응책 및 입법론적 대안을 나름대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한 선행작업으로 비교법적 검토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한편, 본 논문의 주된 연구 대상은 소송금지명령의 한국법상 적용 가능성이지만, 이 논의는 유사한 법제를 따르는 일본이나 독일 등 대륙법계 국가들에게도 약간의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목 차>
제1장 서론
제1절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제2절 상정 가능한 소송금지명령의 여러 모습
제3절 연구의 방법 및 범위
제4절 논의 순서
제2장 소송금지명령의 개요 및 비교법적 검토
제1절 제도의 개요와 실제
Ⅰ. 개념 및 연혁
Ⅱ. 국제적 분쟁에서 가지는 실제적 의미 및 기능
1. 국제적 분쟁에서의 법적 위험 요소와 위험 관리
2. 국제적 소송경합 상황과 대응 메커니즘
Ⅲ. 한국 당사자가 관련된 사례 소개
1. China Trade and Development Corp. v. M.V. Choong Yong 사건
2. Rationis Enterprises, Inc. of Panama and Mediterranean Shipping Co. S.A. of Geneva v. Hyundai Mipo Dockyard Co. Ltd. 사건(선박 MSC Carla 침몰사건)
3.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 5. 16. 선고 2013가합7238 사건
4. Samsung v. Huawei 사건
5. 기타 사건
제2절 비교법적 검토
Ⅰ. 영국
1. 인정 여부 및 근거
2. 요건 및 효과
3. 유형과 형식 및 절차
4. 판례의 소개
5. 영국 법제에 대한 국제적 반응
Ⅱ. 미국
1. 인정 여부 및 근거
2. 요건 및 효과
3. 판례
Ⅲ. 유럽연합(EU)
Ⅳ. 독일 및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
1. 독일
2. 프랑스
3. 기타 유럽국가들
Ⅴ. 일본
Ⅵ. 기타 영미법계 국가들 및 아시아 국가들
1. 호주, 캐나다 등 Commonwealth 국가들
2. 홍콩
3. 중국
4. 시사점
Ⅶ. 국제규범 : UNCITRAL 모델법, 국제중재기관(ICC 등)
Ⅷ. 총평
제3장 한국법원의 발령 가능성
제1절 문제의 소재
제2절 국내의 일반적 논의 현황
Ⅰ. 학설의 태도
1. 긍정설
2. 제한적 긍정설
3. 부정설
Ⅱ. 판례의 태도
1. 대법원 판례
2. 하급심 판례
Ⅲ. 검토 및 私見
제3절 한국법원의 소송금지가처분 발령 가부
Ⅰ. 재판권, 국제재판관할권, 준거법
1. 재판권의 존재
2. 국제재판관할권의 존재
3. 준거법
Ⅱ. 피보전권리의 존재 및 보전의 필요성
1. 보전의 필요성 일반론
2. 인정 여부에 관한 국내의 논의
3. 구체적 요건 및 판단기준 제시(시론)
4. 남용 통제장치로서의 기능
5. 준거법
Ⅲ. 담보의 제공
Ⅳ. 인용결정의 방식(주문례) : 소취하를 명하는 가처분 가부
Ⅴ. 효력 및 집행(간접강제 포함)
1. 효력
2. 집행
제4절 피보전권리의 존재
Ⅰ. 서론
1. 피보전권리 - ‘금지청구권’의 요부
2. 본안 소송의 형태
3. 소송금지청구권의 법적 근거
Ⅱ. 전속적 국제재판관할합의 위반의 경우
1. 전속적 국제재판관할합의의 판단기준 및 허용요건
2. 전속적 국제재판관할합의의 법적 성질
3. 전속적 국제재판관할합의의 효력 일반
4. 손해배상청구권 발생 여부
5. 소송금지청구권 발생 여부
6. 검토 및 私見
7. 준거법
8. 관련 문제 : 관할합의 없는 전속관할 위반의 경우
Ⅲ. 중재합의 위반의 경우
1. 중재합의의 법적 성질
2. 중재합의의 효력 일반
3. 손해배상청구권 발생 여부
4. 소송금지청구권 발생 여부
5. 검토 및 私見
6. 준거법
7. 관련 문제 : 소비자계약의 경우
Ⅳ. 분쟁해결합의 위반 외의 부당한 외국 제소의 경우
1. 서론
2. 국내의 논의
3. 외국의 논의
4. 손해배상청구권 발생 여부
5. 소송금지청구권 발생 여부(시론)
6. 구체적 요건 및 위법성 판단기준 제시(시론)
7. 준거법
Ⅴ. 관련 문제 : 소명책임과 소명정도, 국제예양, 손해배상청구권과의 관계
1. 소명책임과 소명정도
2. 국제예양의 문제
3. 손해배상청구권과의 관계
Ⅵ. 소결론
제5절 한국법원의 중재금지가처분 발령 가부
Ⅰ. 국내외의 논의 개요
1. 국내의 논의
2. 외국의 논의
Ⅱ. 검토 및 私見
제6절 한국법원의 집행금지가처분 발령 가부
Ⅰ. 외국의 논의
Ⅱ. 국내의 논의
제4장 한국 중재판정부의 발령 가능성
제1절 국내외의 논의 개요
Ⅰ. 외국의 논의
Ⅱ. 국내의 논의
제2절 중재법상 소송금지 임시적 처분의 주요 내용
제3절 법원의 소송금지가처분과의 비교
제5장 대응책 및 입법론
제1절 대응책
제2절 입법론
제6장 결론
제1절 국제적 동향과 현실적・정책적 필요성
제2절 결론 및 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