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2016년, 국내 신용카드사는 일제히 채무면제・채무유예상품(DCDS)의 판매를 중단했다. 불완전판매와 높은 요율로 인한 소비자피해와 관련하여 금융감독원이 신용카드사에게 수수료 환급을 요구하는 등 감독을 강화하자, 신용카드사들은 판매중단으로 대응한 것이다. 그 후 일부 카드사가 2018년과 2019년에 상품판매를 잠시 재개하였지만 단발적인 판매에 그쳤다. 2020년 8월 현재 국내의 모든 신용카드사는 이 상품의 신규 판매를 중단한 상태이다. 2020년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에 DCDS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기 위해서 법적 검토를 하였지만 최종적으로는 조항을 신설하지 않았다.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이란 할부매매계약이나 대출계약 등 여신계약의 채권자와 채무자가 여신계약의 일부조항이나 부수계약조항의 형태로 체결하는 계약으로서, 우연한 사건(주로 채무자의 사망, 상해, 질병, 비자발적 실업)의 발생을 조건으로 채권자가 채무자의 잔존채무를 면제해주거나 그 상환을 일정기간 연기해주기로 하고 그 대가로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일정한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계약을 말한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 계약의 보험성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채 신용카드회사의 부가적인 수입원으로서 도입되었다. 상품의 법적 성격이 규명되지 않은 까닭에 어떠한 법규를 적용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았다. 추후 판매과정에서 불완전성과 높은 수수료율이 문제되었으나 법규가 아니라 금융감독원의 감독 강화 조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신용카드사들은 이 조치에 따라서 불완전판매가 입증된 사안에 대해서 계약을 해지하는 등 일부 소비자를 구제해주었으나, 신규판매를 중단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했다. 금융소비자에게는 다양한 금융상품을 적절한 비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고, 금융회사에게는 일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규제공백으로 인해 신규판매를 중단한 채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판매된 상품에 대해서 신용카드회원이 신용카드사에 매달 수수료를 납부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규제가 법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은 하루 빨리 종료되어야 할 것이다. 본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동 상품의 보험성을 규명하고 적절한 규제체계를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신거래에서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을 이용해 온 역사가 짧고 법적 논의가 성숙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긴 역사와 축적된 법리를 가진 미국의 법적 논의를 비교법적으로 연구하고, 지급보장보험(PPI)의 불완전판매로 인한 소비자피해를 적극적으로 구제한 영국의 사례를 검토함으로서 국내법적 시사점을 찾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은 보험계약의 핵심적인 구성요건을 갖춘 계약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반드시 「보험업법」을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여신금융업법」이나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별도의 단행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채무면제・채무유예상품은 일반적인 보험상품과 달리 판매시에 위험의 분류와 언더라이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상품의 수수료율이 각 구매자(신용카드회원)의 사망 및 질병 발생 위험의 크기에 비례해서 산정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동질적 위험을 결집시켜 위험을 분산한다는 보험성을 결여한 것이 아닌지 문제된다. 그러나 보험시장이 발달하면서 금융회사와 각 소비자의 개별계약을 통해서 위험을 이전시키는 것이 보험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고, 당초 동질적 위험집단의 구성원 간에 위험을 분산시킨다는 상호부조적 요소는 다소 퇴색되었기 때문에, 보험의 요건으로서의 위험의 동질성은 완화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상품 판매 시에 위험의 분류와 언더라이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만으로 보험의 위험분산 요건을 결여했다고 볼 것은 아니다. 보험의 기술성도 보험의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기 때문에 수수료율 산정에 대수의 법칙 등 보험기술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보험성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상품 구매자는 질병의 발병 등 우연한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서 신용카드이용대금 상환 채무를 이행하지 못함으로써 부담하게 될 수 있는 경제적・법적 위험을 신용카드사로 이전시키는 방식으로 제거하기 때문에, 위험이전이라는 보험의 핵심적인 요소를 구비하고 있으므로 보험성이 인정된다. 또한, 2018년 5월 29일에 시행된 「신용정보법」과 동법 시행령에서는 신용카드사가 채무면제・채무유예상품 취급 시 카드회원의 질병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기 때문에, 개인별로 위험인수여부를 결정하고 요율을 산정하는 것이 가능해지기도 하였다.
한편, 이 상품이 손해보상성이라는 손해보험의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가 문제된다. 질병의 발병 등으로 인해서 신용카드회원에게 발생한 손해액과 신용카드사가 면제・유예해주는 잔존채무액이 불일치하고, 채무면제・채무유예라는 급부의 특성상 급부실현시점에 실제로 금전이 이동되지 않는다는 점이 보험급부와 다른 점이다. 그러나 손해보험에 적용되는 실손보상법리는 완화해서 적용할 필요가 있고, 채무면제의 경제적・법적 효과는 채무변제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채무유예는 이자에 해당하는 금원을 지급하는 것과 경제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손해보상성을 충족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은 현행 「상법」(제4편 보험) 제638조와 「보험업법」 제2조 제1호의 보험의 핵심적인 요소를 구비한 계약이다. 그러나 어떠한 계약이 보험의 요소를 갖춘 위험이전계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험규제를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규제비용과 법체계적 정합성을 고려해 볼 때, 보험규제법이 아닌 다른 법률로 규율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을 보험으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보험규제를 통해 제거해야 할 해로움이 내재된 계약이어야 한다(규제필요성 기준).
우선, 「보험업법」상의 지급능력규제(건전성규제)의 필요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험업법」에서 보험사의 지급능력에 대해 강하게 규제하는 이유는 보험상품이 보험료 납입시와 보험금 지급시 간의 기간이 매우 길고, 보험료 납입기간과 보장기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보험금의 지급이 보험사의 약속에만 달려 있다는 특이한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보험회사에는 다른 주식회사와 달리 과도한 위험추구전략을 막을 수 있는 집중된 채권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은 수수료 납입기간과 보장기간이 일치하고, 신용카드사로부터 신용카드회원에게로의 금전의 이동(여신)이 보장사건의 발생 및 채무의 면제나 유예라는 급부의 실행에 선행한다는 점에서, 보험과는 다른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용카드사는 보험회사와는 다른 자본조달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집중된 채권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강한 규제를 적용할 필요성이 적다. 이러한 점에서 보험회사에 대한 지불능력규제를 신용카드사에 적용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요율과 판매에 관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보험업법」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상품의 수수료율은 보험요율과 달리 소비자의 위험에 비례해서 산정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행 「보험업법」상의 요율규제는 이 상품에 부적합하다. 특히, 원칙규정과 간접적 통제규정만을 두고 있는 보험업법은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에 존재하는 요율 관련 해로움을 제거하기에 불충분하다. 불완전판매 등을 막기 위한 판매규제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행 보험업법상의 판매규제보다 강화된 규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여신전문금융업법」에 조문을 신설하거나 독립된 단행법을 제정하거나 또는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보험업법」과는 별도의 규제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법체계에 부합하는 규제방식이라고 생각된다.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의 보험성을 규명하고 적합한 규제체계를 모색한 이 연구가 새롭게 생겨나는 다양한 위험이전계약의 보험성을 규명하고 적합한 규제법체계를 마련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022년 3월
임수민
<목 차>
서론
제1절 연구의 목적
제2절 연구의 구성
제1장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 개관
제1절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의 의의
Ⅰ. 정의
Ⅱ. 계약 내용
Ⅲ. 종류
Ⅳ. 신용보험과의 차이점
Ⅴ. 국내 채무면제・채무유예상품의 특징
Ⅵ. 효용과 단점
제2절 채무면제・채무유예상품 시장의 구조와 특징
Ⅰ. 서
Ⅱ. 미국 시장의 형성
Ⅲ. 채무면제・채무유예상품 시장의 특징
제3절 국내에서의 운용현황
Ⅰ. 상품 도입과 금융감독당국의 대응
Ⅱ. 시장 확대와 소비자 불만 고조
Ⅲ. 입법적 시도
Ⅳ. 임기응변적 요율규제와 판매규제의 한계 (상품판매중단)
제4절 소결
제2장 보험성 검토 필요성
제1절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에 대한 현행법 체계
Ⅰ. 개관
Ⅱ. 여신전문금융업법
Ⅲ.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Ⅳ.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Ⅴ. 검토
제2절 보험성 논의 필요성
Ⅰ. 보험업법
Ⅱ. 보험계약법(상법 제4편)
제3절 소결
제3장 미국의 논의
제1절 서
제2절 주요 판결
Ⅰ. 서
Ⅱ. 채무면제계약의 보험성에 관한 판결
Ⅲ. 채무유예계약의 보험성에 관한 판결
제3절 各 州의 입장
Ⅰ. 서
Ⅱ. 뉴욕주와 텍사스주를 중심으로
Ⅲ. 그 외의 주
제4절 소결
제4장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의 보험성
제1절 보험계약이란 무엇인가
Ⅰ. 보험업법의 보험상품 조항
Ⅱ.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 조항의 부재
Ⅲ. 완결된 보험정의의 부존재
Ⅳ. 보험의 개념요소
제2절 위험의 이전과 분산
Ⅰ. 보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위험
Ⅱ. 채무불이행위험의 부보 가능성
Ⅲ. 위험의 이전
Ⅳ. 위험의 결집과 위험의 분산
Ⅴ. 보충적 논의 - 자가보험성
Ⅵ. 보충적 논의 - CLIP보험과의 관계
제3절 언더라이팅과 보험요율산정
Ⅰ. 서
Ⅱ. 언더라이팅과 보험요율산정
Ⅲ. 소결
제4절 손해보상성
Ⅰ. 서
Ⅱ. 실손보상원칙과 피보험이익
Ⅲ. 손해액과 급부액 불일치
Ⅳ. 급부의 특수성
제5절 수지상등원칙과 급부・반대급부균등원칙
Ⅰ. 문제점
Ⅱ. 수지상등의 원칙과 급부・반대급부균등원칙
Ⅲ. 신용위험을 담보하는 보험의 특수성
Ⅳ. 채무면제・채무유예상품의 경우
제6절 소결
제5장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에 대한 보험규제
제1절 서
제2절 보험업법상의 보험업
Ⅰ. 서
Ⅱ. 보험업
Ⅲ. 소결
제3절 보험규제가 적용되는 보험이란
Ⅰ. 보험정의 기준
Ⅱ. 보험용어 기준
Ⅲ. 당사자 의사 기준
Ⅳ. 통제범위 기준
Ⅴ. 주된 목적 기준
Ⅵ. 규제필요성 기준
Ⅶ. 검토
제4절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에 대한 보험규제 필요성
Ⅰ. 보험규제 개관
Ⅱ. 채무면제・채무유예상품에 대한 보험규제의 필요성
제5절 지급능력규제의 필요성
Ⅰ. 서
Ⅱ. 보험회사에 대한 지급능력규제
Ⅲ. 채무면제・채무유예계약의 경우
Ⅳ. 결어
제6절 요율규제와 판매규제의 필요성
Ⅰ. 서
Ⅱ. 요율규제
Ⅲ. 판매규제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