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법학연구총서

입체표지_영국의 이주구금과 법의 지배.jpg

머릿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극단적인 분열과 대립을 들 수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는 강대국과 그 틈바구니에서 실리를 챙기는 주변국,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선전과 선동 을 일삼는 정치인과 편을 나누어 열렬히 그들을 추종하는 대중. 민주정 치는 원래 시끄러워야 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점점 잃어 간다는 상실감은 분명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경고의 신호 이다.

  이런 현상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로마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법의 지배 관념이 싹트고 있었 다. 로마의 법률가 키케로의 국가론은 ‘두 개의 태양’에 관한 이야기로 시 작된다. 라일리우스는 두 개의 태양이 보이는 이유는 궁금해하면서 왜 한 국가에 두 원로원과 두 인민이 있는지는 묻지 않느냐고 힐난한다. 국 가론은 이러한 질문에 스키피오가 답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키케로 는 공화정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원로원 그리고 인민들 사이에서 나타난 극단적 분열과 대립을 최선의 이익 추구가 아닌 옳고 그름, 즉 법의 문제 로 보고 법의 지배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다. 

  오늘날의 민주정치는 좀 다를지도 모른다.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 결정인지는 국민이 더 잘 알고, 정치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내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상황을 보면, 일자리를 빼앗는 가 난한 외국인 노동자를 쫓아내는 것만큼 분명한 주권자의 의사가 없고, 이주민에 대한 거부와 혐오는 민주정치를 통해 여과 없이 표출된다. 미 국은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쌓고 이민자 단속 과정에서 자국 시민의 목 숨도 기꺼이 희생시킨다. 유럽에서는 이민정책의 실패가 곧 정권 교체를 뜻하고, 영국은 독자적인 이민정책을 펼치기 위해 EU에서 탈퇴하는 초 강수를 두었다. 

  국민주권 시대에 국민들의 열망이 이처럼 하나로 똘똘 뭉쳤는데 감히 법이 여기에 제동을 건다는 것은 무리한 상상일지 모른다. 전제군주와 독재자도 몰아냈는데 난데없이 법 따위가 정말로 지배하려 든다면 주권 자의 분노를 살 것이다. 그래서 법의 지배는 흔히 듣기 좋은 말, 이른바 수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오랜 법의 지배 전통을 가진 영국에서도 그러한 비판이 없지 않다. 법원이 사법적극주의를 취한다거나 법관이 법형성을 하여 의회주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다만, 영국에서 이런 비판은 영국의 헌법원리를 잘 못 이해한 것이라는 점에 큰 이견이 없고, 영국 법원은 정치적 외압이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엄격한 법 해석을 통해 법의 지배를 확립해 나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글은 이러한 ‘법의 지배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되 었다. 이주민 추방과 구금은 요즘 한국에서 자주 쓰는 표현을 빌자면, 온 국민이 열망하는 주권자의 명령이다. 주권자의 명령에 제동을 걸고도 법 의 지배라는 이름으로 존경과 찬사를 받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 도 이런 법의 지배가 가능할까? 사실 한국은 아직 이주민 유입 문제가 심각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이주구금에 대한 법적 통제는 영국은 커녕 우리 헌법에 규정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이 책은 이주구금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법의 지배를 다루고 자 한다. 법의 지배 전통을 갖지 못한 우리가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구 현하기란 쉽지 않지만,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가 한 쌍을 이룰 때 비로소 민주주의도 그 참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처음 영국법을 접한 계기는 지도교수이신 전종익 선생님의 공부 모임 이었다. 다이시의 헌법학입문을 처음 접했을 때의 그 희열과 전율은 지 금도 잊을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영국 옥스퍼드에서 유학하게 된 것도, 박사논문 심사라는 험난한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전 종익 교수님의 체계적인 지도와 가르침 덕분이다. 

  이효원 교수님은 이 글의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주셨고, 기존 학계의 논의를 이해하고 헌법재판소 판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 록 깊은 통찰과 폭넓은 시야로 필자를 이끌어주셨다. 

  전상현 교수님은 다양한 관점과 문헌을 토대로 이 글의 학문적 가치 와 신뢰성을 높여 주셨고, 특히 이 책의 핵심인 하디얼싱원칙을 입체적 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상현 교수님 덕분이다. 

이우영 교수님은 영미의 인신보호영장과 우리의 인신보호법이 어떤 흐름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에 관한 필자의 이해 수준을 높여 주셨 고,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말씀도 큰 힘이 되었다. 

  김종철 교수님은 영국 고유의 법체계, 법철학의 흐름을 아낌없이 전 수해 주셨고, 헌법 제12조에서 미국의 적법절차와 영국의 법의 지배를 접목시킬 수 있었던 것은 김종철 교수님 덕분이다. 

  그리고 이 책의 출간을 기해 필자를 학자의 길로 이끌어 주시고 학문 하는 즐거움을 가르쳐주신 정종섭 선생님, 필자가 법률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전수해 주신 박재홍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헌법 제12조에 관한 보고서를 살펴보시고 과 감하게 반대의견을 집필해 주신 이진성 헌법재판소장님, 하디얼싱원칙의 가치를 알아보시고 우리 결정에 반영해 주신 유남석 헌법재판소장님, 영 국 법원의 판례를 손수 우리 결정문에 녹여내 주신 이미선 재판관님의 뛰어난 식견과 결단력에도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 산고의 시간을 묵묵히 함께 견디며 응원해 준 소중한 가족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한다. 


2026. 7.

이 진 철


목차

서문 ・ ⅳ

제1장 서론 ・ 1

제1절 이주구금을 통해 살펴보는 영국의 법의 지배 ·························3

1. 이주구금이라는 새로운 구금의 등장 ···················································3

2. 법의 지배를 통한 헌법적 통제 ····························································5

제2절 이 책의 구성 ·········································································7

제2장 영국 이주구금제도의 형성과 발전 ・ 11

제1절 영국 이주구금의 도입 경위 ··················································13

1. 이민법의 제정 ····················································································13

2. 전쟁과 외국인의 대량구금 ·································································20

3. 전후 이주구금의 확대 ········································································24

4. 브렉시트와 외국인의 법적 지위 변화 ················································30

제2절 오늘날 영국의 이주구금제도 ················································40

1. 영국의 이민법과 집행기관 ·································································40

2. 영국의 이주구금 권한 ········································································42

3. 영국 이주구금의 대상 ········································································46

4. 영국 이주구금의 장소 및 현황 ··························································48

제3절 소결 ·····················································································54

제3장 영국 이주구금의 법적 성격과 구제절차 ・ 55

제1절 이주구금의 법적 성격 ··························································57

1. 영국 이주구금의 법적 성격: 행정구금 ···············································57

2. 이주구금과 형사절차의 차이 ······························································64

제2절 이주구금의 형벌적 성격에 관한 논의 ···································74

1. 1905년 외국인법에 관한 논의 ····························································74

2. 오늘날 이민법과 형사법의 결합 ························································75

3. 이주구금을 형벌의 일종으로 보는 접근 ············································83

4. 소결 ····································································································95

제3절 인신보호영장과 인신구금에 대한 사법적 통제 ······················96

1. 문제의 소재 ·······················································································96

2. 초기 인신보호영장의 기원과 역할 ·····················································97

3. 17세기 인신보호법에 의한 형사절차의 정비 ····································100

4. 19-20세기 형사법의 발전과 인신보호영장의 축소 ····························105

5. 1816년 인신보호법과 형사절차 외의 구금 ·······································110

6. 이주구금에 대한 사법적 통제와 법의 지배 ·····································112

7. 소결 ··································································································116

제4절 오늘날의 사법심사와 법의 지배 ·········································117

1. 이주구금에 대한 이의신청이 가능한지 여부 ····································117

2. 영국 법원의 사법심사와 법의 지배 ·················································122

제5절 소결 ···················································································138

제4장 하디얼싱원칙과 실체적 법의 지배 ・ 139

제1절 법원의 심사기준 강화 ························································141

1. 전시 이주구금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 통제 ·····································141

2. 영연방 시민에 대한 구금과 법원의 태도 전환 ································144

제2절 하디얼싱원칙의 의의 및 내용 ·············································150

1. 위법성 심사기준과 하디얼싱원칙 ·····················································150

2. 하디얼싱원칙의 의의 및 도입과정 ···················································154

3. 하디얼싱원칙의 내용 ········································································162

제3절 현대적 법의 지배와 하디얼싱원칙 ······································174

1. 하디얼싱원칙의 이론적 근거 ····························································174

2. 고전적 법의 지배와 법 관념의 정립 ················································179

3. 이주구금에 대한 현대적 법의 지배 ·················································200

제4절 오늘날 하디얼싱원칙의 역할, 한계 및 수용 ························209

1. 오늘날 하디얼싱원칙의 역할 ····························································209

2. 하디얼싱원칙의 한계 ········································································211

3. 하디얼싱원칙의 국제적 수용 ····························································212

제5절 소결 ···················································································225

제5장 보호조항에 관한 법의 지배 확보 방안 ・ 227

제1절 영국의 법의 지배와 헌법 제12조의 적용범위 ·····················229

1. 행정구금과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 ················································229

2. 보호조항에 대한 하디얼싱원칙 인정 여부 ·······································244

3. 영국의 법의 지배를 규정한 헌법 제12조 ·········································251

4. 헌법 제12조 제3항의 해석 ·······························································259

제2절 헌법재판소 결정의 문제점 ··················································263

1. 문제의 소재 ······················································································263

2. 이주구금과 헌법 제12조 제3항의 법관유보 ······································263

3. 법관유보부정설에 대한 쟁점별 검토 ················································266

4. 헌법재판소 결정의 문제점 ·······························································271

제3절 출입국관리법의 개정 필요성 ··············································278

1. 서설 ··································································································278

2. 출입국관리법 및 개정법률안 ····························································278

3. 헌법 제12조 제6항과 인신보호법의 문제점 ······································280

4.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한 인신보호영장의 도입 ·····························286

5. 하디얼싱원칙에 따른 출입국관리법의 개정 ······································293

제4절 소결 ···················································································299

제6장 결론 ・ 301

참고문헌 ・ 306

찾아보기 ・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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