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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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2024년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Daron Acemoglu 교수와 James A. Robinson 교수는 어느 국가가 실패하는가: 권력, 번영, 그리고 빈곤의 기원(Why Nations Fail: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이라는 제목의 공동저서에서 한반도에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가장 가까이 붙어 있으면서 가장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두 종류의 경제체제를 비교분석했다. 1945년에 남북한이 분단될 당시에는 북한의 공업이 오히려 더 발전한 상태였고 남한은 주로 농업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로 출발했다. 소련 및 중국의 지원으로 북한은 1960년대까지 상당한 경제성장을 보여줬다. 그러나, 2023년 현재 대한민국의 1인당 GDP33,121달러(구매력 기준 54,033달러)로 북한보다 30배 많고, 우리나라의 기술혁신은 최상위 5위권에 속하는 높은 수준이지만 북한의 기술혁신은 최하위권으로 밀려났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83세로 북한 사람들보다 9년 더 오래 산다. 70여 년 사이에 무엇이 이토록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냈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노벨상을 수상한 두 명의 경제학 교수들은 권력과 번영 그리고 빈곤의 기원을 분석하고 부국강병의 방법론을 제시했다.

부국강병은 기술혁신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우리 인류의 역사는 기술혁신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이 최고의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데 그 뒤에는 기술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영국이 19세기에 태양이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한 것도 18세기부터 증기기관의 활용을 비롯한 기술혁신으로 산업혁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세의 유럽은 암흑기에 경제적으로 침체되어 있었지만, 중국은 찬란한 문명과 국력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당송시대에 이미 화약과 종이를 발명하고 인쇄술과 나침반을 비롯한 기술혁신에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상대적으로 기후와 토양도 좋았지만, 기원전 25세기에 벌써 청동기와 상당한 농경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만 명 단위로 정착해서 생활하는 풍요로운 농경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기술혁신은 백성을 사랑하는 자비로운 왕이 지시하거나 공산당이 계획해서 이뤄지지는 않는다. 지속적인 기술혁신과 부국강병은 왕의 지시나 국가의 명령이 아니라 상공업의 자유와 재산의 보호를 가능하게 해주는 안정된 시장질서의 뒷받침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자유와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다고 하는 믿음과 예측가능성이 있으면 상공인들이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더 열심히 노력하고 모든 구성원들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다. 기술혁신으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상공인들은 시장 점유율을 늘리면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소비자들은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누리면 국가 전체의 총생산은 커지고, 상공인 및 소비자들의 자유와 재산을 외부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군사력도 강화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유와 재산의 보호, 기술혁신, 총생산의 증가로 이어지는 변화와 과정은 생산과 소비가 만나는 현실적인 공간 또는 개념적인 공간, 시장에서 일어날 수 있다.

기술혁신과 부국강병은 언제나 모든 나라에서 똑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나라마다 시장이 다르고, 법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기술혁신의 속도와 방향도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15세기에는 베네치아를 비롯한 이태리 도시국가들이 유럽에서 가장 부강했지만 16세기에는 스페인, 17세기에는 네덜란드, 18세기에는 영국이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19세기 이후에는 미국이 첨단기술을 선도하면서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패권의 변화 뒤에는 바로 법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자유와 재산의 보호에 있어서 합리적인 법제도를 갖춘 나라에서 효율적인 시장이 발전하고 기술혁신이 촉진되면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게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이 부국강병을 이룩하려면 어떻게 첨단기술을 확보하고 어떻게 법제도를 개선해야 할까? 시장의 역사를 살펴보고, 각 시대 각 국가의 시장질서에 따라서 기술혁신과 부국강병이 좌우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정답이 나올 것이다. 최근에 모두 한결같이 인공지능 기술이 관련 시장과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떠한 법제도와 어떠한 시장질서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인공지능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제적, 군사적 지위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은 시장과 기술혁신 그리고 법제도가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독자들과 함께 우리의 법제도와 시장질서의 선택에 관한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집필한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피드백을 부탁드리고 독자여러분의 질책과 조언을 받아서 계속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20257

정상조


목차 

CHAPTER 01 역사 속의 시장 1

시장의 탄생 4

서양의 자본주의 시장 8

비단길과 동양의 황금기 14

변방의 자유 18

레콩키스타 24

저지대의 자유 27

자유와 재산권 보장의 헌정질서 32

자유와 기회의 신대륙 37

시장경제 vs 계획경제 45

사회주의 시장경제 49

베트남과 북한 58

 

CHAPTER 02 시장의 변화 63

길드의 판매특권 66

인쇄술과 출판시장 68

출판시장의 질서 72

새로운 시장의 탄생 78

시장을 끌고 간 엔진 82

평등해서 더 경쟁적인 시장 87

특허와 시장의 갈등 94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 98

예술시장의 탄생과 변화 104

모방경제와 해적시장 111

국가 주도의 시장경제 116

국제적 시장실패 122

 

CHAPTER 03 시장의 경쟁질서 129

시장과 정부 130

가격경쟁 vs 혁신경쟁 138

운영체제(OS)시장의 독점 144

디지털시장에서의 경쟁 154

유럽과 미국 시장의 차이 158

대한민국의 시장 160

브랜다이스학파의 부활 163

국가안보와 경쟁질서 168

국가안보와 표준기술 172

인공지능시대의 시장 180

개인정보와 경쟁질서 184

데이터 자본주의 188

트럼프 2.0의 시장질서 196

우리의 선택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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