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국제범죄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일제에 의해 강점당했고, 북한의 침략과 동족상잔의 전쟁, 그리고 군대가 시민을 학살한 5・18을 겪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법적 청산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분단된 조국이 통일되면 과거청산이 문제될 것이다.
이 책의 주제인 지휘관책임은 지도자(지휘관, 상급자)들의 국제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룬다.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고, 총과 칼을 통제하는 실권자들이야 말로 국제범죄의 발생에 가장 책임이 큰 자들이다. 지휘관책임은 자신의 실효적 통제 하에 있는 부하(하급자)의 범죄에 대하여 알았거나 이를 과실로 알지 못한 국가, 군, 또는 이에 준하는 조직의 지도자(상급자)가 부하(하급자)의 국제범죄를 방지, 억제, 처벌, 보고하지 않은 경우에 상급자에게 성립하는 형사책임이다. 지휘관책임의 객관적 요건은 부하에 대한 상급자의 실효적 통제(상급자-하급자 관계), 부하의 범죄에 관한 상급자의 의무 불이행(부작위), 부하의 국제범죄의 발생이고, 주관적 요건은 부하의 범죄에 대한 인식 또는 인식의 실패이다. 국가의 개입이나 묵인이라는 국제범죄의 집단범죄성은 상급자가 부하의 국제범죄를 통제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 즉 상급자의 부하에 대한 “실효적 통제”라는 요건에 반영된다.
지휘관책임의 법적 성질에 관하여는 독립범죄설과 책임형식설이 대립하고 있다. 책임형식설은 상급자가 부하의 범죄에 부작위에 의해 가담·참여한 공범의 일종이라고 보는데 반하여, 독립범죄설은 부하의 범죄에 대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급자의 부작위에 대한 형사책임으로 부하의 범죄와는 독립된 범죄라고 이해한다. 책임형식설은 부하의 범죄에 대하여 상급자를 유죄로 처벌하여 온 국제형사재판의 실무를 설명하는데 용이하지만, 상급자가 부하의 범죄에 대하여 알지 못한 경우와 부하의 범죄가 발생한 후에 상급자가 처벌(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를 설명하는데 난점을 보여준다. 책임형식설과 독립범죄설의 대립은 ICC 로마규정의 이행입법에서 그 차이가 나타난다. 책임형식설을 택하는 경우에 국제형법의 통일적・일원적 지휘관책임이 각국의 공범체계에 따라 재구성되면서 지휘관책임이 그 유형별로 분리되고, 결국은 국가별로 지휘관책임의 내용이 달라지는 결과를 초래한다(지휘관책임의 다원화).
독일은 지휘관책임을 국제형법전에 도입하면서 상급자의 고의와 과실, 작위의무의 내용을 기준으로 3가지 규정을 만든다. 상급자가 부하의 범죄에 대하여 알면서 범죄를 방지하지 않은 경우에 상급자를 정범과 같은 형으로 처벌하는 총칙규정 1개(제4조), 상급자의 고의 또는 과실의 감독의무위반과 과실에 의한 부하의 범죄의 방지의무위반을 결합한 감독의무위반죄(제13조), 부하의 범죄를 고지하지 않은 부작위를 처벌하는 범죄보고불이행죄(제14조)를 규정하였다. 우리나라의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국제범죄처벌법”)은 독일의 국제형법전을 참고로 하였으나 독일 국제형법전의 제13조와 제14조에 해당하는 내용을 하나의 직무태만죄로 구성함으로써 독일과 달리 2개의 조문(국제범죄처벌법 제5조, 제15조)을 두고 있다.
독일 국제형법전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국제범죄처벌법은 직무태만죄(제15조)에 시효가 적용되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실의 범죄보고불이행죄를 처벌하지 않고 있다. 지휘관책임의 범죄보고불이행죄는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와 그 적용 대상과 법적 성격이 전혀 다르다. 불고지와 달리 지휘관책임의 범죄보고불이행죄는 시민의 양심의 자유나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한 지도자들의 의무위반을 처벌하는 것이다. 지휘관책임에 대한 시효의 적용과 과실 범죄보고불이행죄의 불벌은 국제형사재판소(ICC) 로마규정과 배치되며, 국제범죄의 성격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요 국가들의 로마규정의 이행입법과도 다르다. 따라서 ICC 로마규정의 보충성 원칙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법원이 ICC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자국민에 대한 우선적 재판권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휘관책임에 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고, 과실의 범죄보고불이행죄를 신설하는 등 우리나라 국제범죄처벌법의 문제점을 보완하는데 필요한 내용을 담은 지휘관책임 “부분개정안”(私案 I)을 제안한다. 한편, 지휘관책임에 관한 각국의 입법을 통일할 수 있는 방안으로 독립범죄설에 기초한 지휘관책임 “전면개정안”(私案 II)을 별도로 마련함으로써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장래의 입법에 참고가 되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말을 남긴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인 “국제범죄에 대한 지휘관책임의 연구”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누구보다 지도교수이신 한인섭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 선생님이 없으셨다면 이 책도,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박사학위 심사위원이셨던 신동운 교수님, 조국 교수님, 이근관 교수님, 이승호 교수님께 다시 없이 큰 은혜를 입었다. 교수님들로부터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받은 것은 내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몇 년에 거쳐 연구한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 괴로웠던 부분들이 심사과정을 통해서 쉽게 이해가 되었다. 다섯 분의 고명하신 선생님들로부터 동시에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언제 다시 가질 수 있겠는가! 신동운 교수님은 한국 형법의 진수를, 조국 교수님은 학자의 치밀함을, 이근관 교수님은 국제법의 접근법을 가르쳐 주셨다. 이승호 교수님의 지적은 국제형법의 책임형식설을 종전과 다른 관점에서 검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심사위원이셨던 교수님들 외에도 국제인권법을 가르쳐 주신 정인섭 교수님, 형법 이론을 가르쳐 주신 이용식 교수님, 형사소송법을 가르쳐 주신 이상원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이 책의 이곳, 저곳에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연구회 회원,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들, 특히 형사법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검찰과 법무부에서 같이 고생했던 선・후배 동료들, 특히 문성우 변호사님과 안상돈 검사장님께 감사드리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나를 지도하고 보살펴 주셨던 권오곤 ICTY 전 재판관님과 송상현 전 ICC 소장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이재순, 신현수, 김진국, 박성수, 조민행, 김남준, 이석범, 이성호, 김인회, 차규근 변호사님, 그리고 지금 개혁을 위해 같이 고군분투하시는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위원님들과 출판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 일일이 거명하지 못한 친구와 후배・동료들에게도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가족들에 대하여 한없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이번 기회를 통하여 표현하고 싶다. 내가 박사가 될 줄 모르시고 돌아가신 어머니께 가장 죄송하다. 어머니 생전에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아버지, 누님과 형님 내외께도 고맙다. 장인, 장모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큰 처남 내외와 작은 처남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아버지와 장인, 장모님께는 앞으로 정말 잘해야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박사 논문 쓰는 동안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은 아내와 아이들(채은, 유진)에게도 사랑과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이 책에 영광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나의 아내, 한예성에게 돌아 갈 몫이다.
2017년 12월
이윤 제
<목 차>
제1장 서론
제1절 연구의 목적
제2절 연구의 범위와 방법
1. 선행연구의 검토
2. 연구의 범위
3. 연구의 방법
제2장 국제범죄와 지휘관책임
제1절 국제형법의 의의와 효력
1. 국제형법의 의의와 법원(法源)
2. 국제형법의 효력
제2절 국제범죄
1. 국제범죄의 의의
2. 국제범죄의 집단범죄성(Collective Criminality)
제3절 국제범죄와 지휘관책임
1. 지휘관책임의 의의
2. 지휘관책임의 집단범죄성 – 조직의 명령권자의 책임
3. 지휘관책임의 문제점
제3장 관습국제법의 지휘관책임
제1절 지휘관책임의 성립 - 야마시타 사건
1. 미국 군사위원회
2. 미국 연방대법원 – 죄형법정주의 논쟁
3. 분석과 비판
제2절 지휘관책임의 전개 – 도쿄 재판
1. 뉘른베르크와 도쿄 국제군사재판
2. 도쿄재판
3. 도쿄재판 다수의견
4. 도쿄재판 반대의견
5. 분석과 비판
제3절 지휘관책임의 성문화 – 1977년 제1추가의정서
1. 지휘관책임의 성문화 과정
2. 1977년 제1추가의정서
제4절 지휘관책임의 확립 – ICTY
1. 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ICTY)와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ICTR)
2. ICTY 규정 제7조 제3항 [ICTR 규정 제6조 제3항]
3. ICTY의 Čelebići(쳴리비취) 판결
4. 다른 책임과의 관계
제4장 국제조약의 지휘관책임 - ICC 로마규정
제1절 지휘관책임의 성안과정과 특징
1. 로마회의
2. ICC 로마규정 지휘관책임의 특징
제2절 ICC 로마규정 제28조
1. 상급자-하급자의 관계
2. 주관적 요건
3. 상급자의 의무 불이행
4. 인과관계
제5장 지휘관책임의 법적 성질
제1절 지휘관책임의 이중성
제2절 국제형법의 체계
1. 공범론
2. 책임형식
제3절 지휘관책임의 법적 성질에 대한 견해의 대립
1. 책임형식설
2. 독립범죄설
3. 절충설
4. ICTY
5. ICC Bemba(벰바) 사건
제4절 분석과 비판 – 독립범죄설의 지지
1. 지휘관책임의 단일성・통일성 유지
2. 특별고의를 요건으로 하는 부하의 범죄
3. 책임주의
4. 부하의 범죄의 법적 성격
제6장 국내적 국제형법 – ICC 로마규정 이행
제1절 ICC 로마규정의 이행과 보충성의 원칙
1. 국제형법의 집행 시스템
2. ICC 로마규정의 보충성 원칙
3. ICC 로마규정의 이행입법
제2절 각국의 이행입법 개관
1. 캐나다
2. 네덜란드
제3절 독일 국제형법전
1. 개관
2. 제4조 [군지휘관 및 기타 상급자의 책임]
3. 제13조 [감독의무위반]
4. 제14조 [범죄보고불이행]
5. 독일 국제형법전의 지휘관책임 비판
제7장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절 제정 과정
1. 2004년 법률안
2. 2007년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절 「국제범죄처벌법」의 지휘관책임
1. 개관
2. 제5조 [지휘관과 그 밖의 상급자의 책임]
3. 제15조 제1항과 제2항 [고의 또는 과실의 범죄 방지・제지 직무태만]
4. 제15조 제3항 [범죄보고 직무태만]
제3절 우리 형법의 책임주의와 지휘관책임
1. 형법 제8조
2. 형법 제34조 제2항(특수 교사・방조)
3. 「국제범죄처벌법」의 지휘관책임과 책임주의
제4절 지휘관책임 개정사안(改正私案)
1. 「국제범죄처벌법」 지휘관책임의 문제점
2. “부분개정안”(私案 Ⅰ)과 “전면개정안”(私案 Ⅱ)
3. 지휘관책임 부분개정안(私案 Ⅰ)
4. 지휘관책임 전면개정안(私案 Ⅱ)
제8장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