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분단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하겠습니다. 분단의 해소는 통일로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남북한 간의 통일은 세 가지 층위에서 이유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역사의 층위입니다. 사회주의 이념을 국가운영의 원리로 적용하려는 실험이 실패하면서 세계사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통일의 역사적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당위의 층위입니다. 한민족으로서 함께 만들어 온 전통과 역사를 복원하고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열어가야 한다는 것이 통일의 당위적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셋째, 현실의 층위입니다. 분단으로 인한 비용과 고통의 제거 및 경제적인 활로의 모색이라는 측면에 통일의 현실적 이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세 가지 층위에서 이유를 가지고 있는 남북한 간의 통일이 실현될 때 우리 사회의 분단모순은 제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 이유를 직시하고 당위적 이유를 짊어진다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현실적 이유에 의한 통일방법의 개척과 통일시대의 준비입니다. 이 책은 통일을 위한 준비의 하나로서 법제적 차원에서 구상된 것입니다.
저는 검찰 공안검사로서 개성공단에서 발생한 형사사건을 처리하면서 남북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법무부 통일법무과 검사와 통일부 장관법률자문관으로 근무하면서 통일에 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하여 북한에 10여 회 다녀오는 경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위와 같은 과정에서의 고민과 경험의 결과물로서, 저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사학위논문인 ‘경제개발구법에 관한 연구’를 보완・정리한 것입니다.
책을 발간하면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2017년 9월
장소영
<프롤로그>
북한 체제전환을 견인할 경제개발구의 성공
김정은 정권은 북한에서 1990년대 이후 지속된 경제적 대외개방 정책인 경제특구 정책을 지속하면서 이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경제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2013년 발표된 경제개발구법은 김정은 정권이 설계하고 추진하는 경제특구 정책의 규범적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특구 정책은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전환 이전에 정치체제를 정당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경제력 확보를 위하여 채택해왔던 정책이며, 특정한 유형의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경제특구 정책이 결국 경제체제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이자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김정은 정권의 경제특구 정책을 보여주는 경제개발구법을 체제전환의 규범적 관점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어떤 유형의 체제전환 국가들에서 경제특구 정책이 경제체제의 전환을 이끌었으며, 이때 규범적 기준이 되었던 법률의 형식과 내용 및 수준은 어떠했는가.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경제체제 전환의 도상에 있는 북한의 경제개발구법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궁극적으로 북한의 체제전환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개발구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떠한 규범적 과제가 있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첫 번째 담화인 2012년 ‘4•6 담화’를 통해 내각에서 결정된 경제정책의 확고한 추진과 국가재정의 내각집중을 강조했다. 경제부문에 대한 내각책임제 실시는 김정일 시대부터 강조된 것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국방산업 우선정책이 추진되었음에 비하여 주민생활 향상을 강조하였음이 눈에 띄는 변화이다. 또한, 박봉주 내각총리를 비롯해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당시 개혁•개방을 주도한 경제관료와 기술관료의 대부분을 재임용하여 내각책임제의 추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박봉주 내각총리는 2014년 최고인민회의에서 유임되었으며, 내각총리의 현장시찰이 공개적으로 보도되는 것도 김정일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새로운 경제특구 전략으로서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목표로 하는 경제개발구 정책이 추진되었으며 2013년 경제개발구법과 그 하위규정의 제정으로 북한의 특수경제지대 법제는 협의의 의미에서의 경제특구 법제와 경제개발구 법제로 재편되었다.
북한의 경제특구 전략은 1991년 라선자유경제무역지대 지정을 시작으로 2013년 경제개발구 정책에 이르기까지, 체제생존의 위기상황을 탈출하기 위한 시도로 추진되어 왔다. 경제특구 정책은 동유럽과 동아시아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과 개방 과정에서 체제전환의 주요기제로 작동했기 때문에, 북한의 새로운 경제특구 전략인 경제개발구 정책의 규범적 기준이 되는 경제개발구 법제에 대한 연구는 북한의 체제전환을 대비할 때 필수적이다.
통일이 점진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라면 북한은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체제만의 전환을 도모할 가능성이 크며, 이 과정에서 경제난 타개를 위한 방책으로 외자유치의 창구인 경제특구 정책을 지속할 것이다. 이런 경우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공조하면서 통일을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체제전환의 관점에서 북한의 경제개발구법을 분석하여 경제개발구를 통한 체제전환의 규범적 과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제개발구를 통해 북한의 경제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통일비용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북한의 경제수준 상승이 중국과 같이 사회주의 정치체제의 고착화를 불러올 우려도 있으나 대만과 중국의 점유면적 및 인구, 국제정치적 파워 등의 차이가 대만이 중국을 자유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국가로 견인하지 못하는 중요 요소임에 비하여,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 있어서는 점유면적 및 인구, 국제정치적 파워 등에서 우월한 남한이 장기적으로는 북한체제를 견인할 수 있는 여지가 크며, 이러한 전제하에 논의를 진행한다.
또한 급진적인 방식으로 통일이 이뤄지는 경우에도 북한 지역의 경제력을 단시간 내에 제고시키고 남북한 간의 경제력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으로서 북한의 일부 지역에 경제특구를 운영하는 것은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으므로 현행 북한의 경제특구 법제에 대한 분석 및 활성화를 위한 규범적 과제 검토가 요청된다. 두 경우 모두 법제통합의 기초라는 시각에서도 북한의 경제특구법을 분석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북한이 경제특구에 집착하는 이유
탈냉전을 야기한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이데올로기 대립의 종지부를 찍는 이정표였다. 탈냉전기를 전후로 사회주의권은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에 있어서 전환의 속도 및 동시성을 기준으로 다양하게 분화했다.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의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체제전환의 속도와 동력 및 영역에 있어서 차이를 보였으며 중국과 베트남은 경제체제의 변화를 통해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힘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시장사회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유형을 창출했다. 북한은 만성적 경제난의 근본적인 원인과 배경에 대하여 사회주의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과 전략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정치•사상적 통제와 기존의 사회주의 제도 강화를 통해 대내외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탈냉전기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수령체제를 통한 현상타파가 아닌 경제특구를 비롯한 시장경제적 요소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이 취해온 강성대국 건설이란 사상•군사•경제를 3대 기둥으로 한다고 설명하지만 결국은 만성적인 경제난 극복을 통한 사회주의 경제강국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을 통해 체제를 강화하고자 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경제특구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불가피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탈냉전기에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등의 국가들이 심각한 경제체제의 내부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을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인식했던 것과도 같다. 경제체제의 내부적인 모순은,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치체제의 전복을 가져올 수도 있는 체제위협의 요인이라는 점을 북한은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여러 차례 경제특구 개발에서 실패를 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경제특구 정책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의 동시적인 전환을 이룬 동유럽은 경제체제의 전환에 있어서 전면적인 개혁조치를 실행했기 때문에 경제특구 전략이 외자유치를 통한 경제발전의 기제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과 베트남 같은 동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우에는 경제체제의 전환을 시도하는 과정이 길고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경제특구 전략은 그 과정에서 경제체제 전환의 실험실이었고 개혁과 개방의 촉진제였다.
경제특구 정책을 통해 개혁과 개방을 시작하는 것으로 경제체제의 모순을 극복함으로써 정치체제의 강화를 시도했던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유형의 체제전환 국가들에서, 경제체제의 전환으로 인해 경제체제 자체의 완전한 자본주의화가 가속화됨은 물론이고, 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필연적인 상관관계로 인하여 정치체제의 영역에서도 부분적이나마 국제규범과의 동질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북한은 정치체제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경제특구 정책을 통한 경제난 극복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특구 정책이 지속될 경우 북한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개혁과 개방을 확산시키고 체제전환을 가속화하는 기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다면 다수의 인간은 체제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동유럽과 소련의 사회주의 정치체제가 몰락한 것은 결국 사회주의 국가 내부의 경제위기라는 절대적 요인과 서유럽 국가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경제적 박탈감이라는 상대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서,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문제를 집권층이 적시에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중국과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이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이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적 조치를 집권층이 선제적•성공적으로 취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제전환에 관한 연구들은 이들이 보여주는 차이와 그 결과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경제체제의 전환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고 해도 정치체제로서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국가와 폐기한 국가 간에는 규범적인 간극이 있을 것이며, 법제전환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각각의 규범적인 특징도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체제전환 국가의 법제전환 유형과의 비교를 통해 북한 경제특구 법제의 변화양상을 살펴보고 경제개발구법을 비교•분석하여 북한의 성공적인 경제체제 전환을 위한 규범적 과제를 설정하는 것은 통일을 앞당기고 통일 이후의 통합을 도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국제법적인 비교법 차원에서 WTO에 가입하여 경제체제의 자본주의화가 심화되기 이전에 제정된 중국과 베트남의 대표적인 경제특구법을 북한의 경제개발구법과 비교하는 것은, 중국과 베트남 경제특구의 경험을 통하여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완고하게 고수하는 북한에게 있어서 경제특구 전략이 가지는 함의를 분석하고 경제특구 법제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할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개발구법 비교법적 분석의 첫 시도
북한법적인 비교법 차원에서는, 경제개발구법은 특수경제지대인 경제개발구의 일반법으로서 2013년 5월 제정되었다. ‘특수경제지대’란 북한의 정의에 따르면 “국가가 특별히 정한 법규에 따라 투자, 생산, 무역, 봉사와 같은 경제활동에 특혜가 보장되는 지역”을 의미한다. 정의에서부터 사용되고 있는 ‘국가가 특별히 정한 법규’는 특수경제지대를 창설하고 운영하는데 적용되는 각종 법과 규정의 총체로서 이를 특수경제지대 법제라고 한다면,북한에서는 1993년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이 제정된 이래 2013년 경제개발구법, 2015년 9월 경제개발구 세금규정에 이르기까지 특수경제지대 법제에 속한다고 분류될 수 있는 수십 개의 법과 하위규정들이 제정되었다.
이러한 북한 특수경제지대 법제의 변화양상을 경제개발구법을 중심으로 비교•분석하는 것은 북한법제가 체제전환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보이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경제특구법제 관련 일반법의 지위에 있는 법과 북한의 경제특구의 한 유형인 경제개발구의 일반법인 경제개발구법의 비교법적인 분석은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의 경제개발구법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하고 향후 북한의 경제개발구 정책이 성공하고 경제개발구 법제가 체계적으로 구축되기 위한 규범적인 과제를 설정함으로써 넓게는 북한의 특수경제지대별로 산재하는 수십 개의 법과 규정들을 체계적인 지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좁게는 경제개발구 법제의 각 영역별 체계화에 있어 부족한 분야에 적합한 형식과 내용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목 차>
제1장 북한 특수경제지대 법제와 경제개발구 법제
Ⅰ. 특수경제지대의 역사와 규범체계
1. 자본주의 확산 겁낸 모기장식(式) 개방정책
2. 부침(浮沈)이 거듭되는 개발 현황
3. 외국인 투자정책의 기본을 규정한 헌법 제37조
4. 북한 특수경제지대 법제
Ⅱ. 경제개발구 법제의 주요 내용
1. 경제개발구의 창설과 거버넌스
2. 기업의 경제활동
3. 기업운영 활성화
4. 제재 및 분쟁해결
Ⅲ. 경제개발구 법제와 다른 특수경제지대 법제와의 비교
1. 체계와 기본제도
2. 개발과 거버넌스
3. 기업의 경제활동
4. 기업운영 활성화
5. 제재 및 분쟁해결
Ⅳ. 경제개발구 법제에 대한 평가
제2장 체제전환 국가의 법제전환과 경제특구 법제
Ⅰ. 체제전환 국가의 분류
1. 체제전환의 개념에 대한 다양한 논의
2. 본래적 의미의 급진주의와 점진주의 논쟁
3. 전환의 속도 기준 분류
4. 전환의 동력 기준 분류
5. 전환의 영역 기준 분류
Ⅱ. 체제전환 국가 유형별 법제전환
1. 급진주의-아래로부터-이중전환 유형
2. 급진주의-위로부터-이중전환 유형
3. 점진주의-위로부터-단일전환 유형
Ⅲ. 유형별 법제전환의 특징과 차이
제3장 점진주의-위로부터-단일전환 유형 경제특구법과 북한의 경제개발구법
Ⅰ. 경제특구의 개념과 유형
Ⅱ. 점진주의-위로부터-단일전환 유형 경제특구 법제
1. 중국의 특별경제구 법제
2. 베트남의 특별경제가공구 법제
Ⅲ. 북한 법제의 점진주의-위로부터-단일전환 유형적 특징
1. 헌법 규정
2. 경제 분야 법제정비
Ⅳ. 중국 및 베트남 경제특구법과 경제개발구법의 비교
1. 구조와 체계
2. 기본제도와 원칙
3. 기업활동
4. 분쟁 해결과 신변안전 등
5. 비교법적 평가
제4장 경제개발구를 통한 체제전환의 규범적 과제
Ⅰ. 경제개발구법의 문제점
1. 형식과 체계
2. 내용상의 문제점
Ⅱ. 경제개발구의 성공을 위한 개선방안
1. 경제개발구 법제도의 정비
2. 남북 교류 협력 법제의 확대와 강화
Ⅲ. 경제개발구 지원을 위한 과제
1. 남한 법제의 개선을 통한 지원
2. 국제법 체계와의 정합성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