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한국법제사라는 과목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시절의 마지막 해였다. 내가 수강을 할 때에는 박병호교수님의 제자인 심희기교수님의 강의가 개설되었다. 수업은 각 주제별로 심희기교수님께서 그간 써오셨던 논문을 토대로 강의가 진행되었고, 리포트도 부과되었다. 특히 종중재산분쟁과 관련하여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수업이 진행되었다. 당시까지 현대사회의 권리의무관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여 실정법속에서 헤매고 있던 나에게는 한국법제사라는 과목이 실생활을 벗어나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역사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 학기를 수강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다루었던 부분이 종중재산분쟁과 관련된 부분이었는데, 현행 실정법을 해석하는 데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법과 관행들이 은연중에 연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제도로서 저 너머로 사라졌던 전통법제들이 아직까지도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서구법 일색인 현대법제에서 전통법제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현대법을 적용하는 시점에 그 근거로서, 또 우리의 의식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살아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곳곳에 숨어 있는 우리의 전통법제를 지상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현대법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현대법에 대한 고민 없이 과거의 것만 좇아서는 고고학만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한 학기동안 한국법제사를 수강하면서 실정법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했던 생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우둔함에 우선 과거의 것만이라도 밝혀보자는 현실적인 도피를 하고 있다.
이듬해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전공에 대한 고민은 별 필요가 없었다. 박병호교수님의 연구실로 찾아갔다. “미친놈, 여기 또 왔구만”. 이런 소리를 들으며 쫓겨나야 했다. 울산대 김유미 교수님이 당시 박병호 교수님의 연구실에 계셨는데 쫓아 나오시면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으셔서 그런 말씀하신다고 공부할 생각이 있으면 계속 찾아오라고 하셨다. 대학원 수업 수강도 하면서 계속 찾아뵈었다. 찾아뵙는 와중에 한국법사학회 준비도 하게 되었고, 한국법제사의 선배들도 만나게 되었다. 자연스레 한국법제사의 일원이 된 것이다. 박병호교수님께서는 특유의 인품과 학식, 그리고 유머로 좌중을 엄격하지만 부드럽게 이끌고 가셨다. 이런 학풍 속에서 1996년 8월에 박병호교수님께서 정년퇴임을 하시기까지 1년 반을 지내면서 기초적인 실력을 닦았다. 1997년 석사학위논문을 쓸 때는 박병호교수님 후임으로 정긍식교수님께서 오셨다. 석사학위논문을 써야했다. 논문 주제는 ‘대명률의 수용과정’이었는데 당시 비슷한 주제의 논문을 쓰고 계시던 박병호교수님께서 흔쾌히 자료를 공유해주셨다. 박병호교수님께서 제공해주신 ‘조선왕조실록’의 원문자료, 정긍식교수님께서 제공해주신 각종 논문 자료를 토대로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정긍식교수님께서는 사료를 꼼꼼히 보고 자세하게 보는 법을 일러 주셨다. 그리고 이때 접하게 된 ‘대명률’은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화두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때의 관심은 이 책의 토대가 된 박사학위논문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법제사를 공부하게 된 과정을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교수님들께 고마운 뜻을 표하고 이 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이고, 그리고 나 자신 새롭게 초발심으로 돌아갈 것을 다짐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이 대명률에 대한 책이다. 대명률은 중국의 형법이지만 조선에 수용된 이래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적용되었다. 말하자면 중국의 법률이지만 우리의 법으로 진화해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명률만이 우리 전통시대의 형법인 것은 아니다. 중국의 형법인 대명률은 중국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중국사회와 조선사회가 다르듯 형법도 세부적인 면에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면들은 國典에 개별규정으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전통시대의 형법이라고 한다면 대명률과 國典의 개별규정들을 아우르는 것이 될 것이다. 본서에서는 이들을 보고자 하였다. 대명률이 실제로 조선사회에 적용되는 모습, 그리고 수정되는 모습들과 國典에 특별히 규정되는 것들에 대하여 보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법을 적용한다’라는 것이 전통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쳤는가에 대하여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마무리된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 너무 성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구체적으로 다루어야 할 부분들, 특히 조선 후기의 부분들이 아직까지 많은 공백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공부의 부족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제 고마운 분들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 길로 이끌어주신 박병호교수님, 심희기교수님, 정긍식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그리고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격려를 해주시는 최종고교수님, 글을 꼼꼼히 보아 주시고 전체적인 맥락을 정확히 짚어주시는 최병조교수님, 학문하는 자세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한인섭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아울러 이 책을 출판하게끔 해주신 정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장님과 연구소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늦은 나이까지 공부하는 데 뒷바라지를 해주신 어머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형님내외분, 그리고 이 책을 쓰느라 생긴 스트레스를 불평없이 받아준, 곧 나의 아내가 될 수진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예쁘게 편집해준 경인문화사 한정주님에게도 감사드린다.
2007년 7월
저자
차 례
제1장 서 론
Ⅰ. 연구의 목적
Ⅱ. 기존의 연구들
Ⅲ. 연구의 범위 및 방법
Ⅳ. 이 글의 구성
제2장 ≪大明律≫의 成立과 受容
제1절 ≪大明律≫의 성립과 내용
Ⅰ. ≪大明律≫의 성립
Ⅱ. ≪大明律≫의 내용과 성격
제2절 ≪大明律≫의 受容
Ⅰ. ≪大明律≫의 전래와 受容
1. 統一的 刑律의 필요성
2. ≪大明律≫의 傳來와 受容
3. 太祖의 卽位敎書
4. 동아시아 3국의 中國法 受容方式의 차이
5. ≪大明律≫의 直解와 底本
6. ≪大明律直解≫의 위상
7. ≪大明律直解≫의 구체적 내용
Ⅱ. ≪大明律≫의 기본 刑事規範으로의 확립과정
1. ≪大明律≫ 체계 이해의 심화
2. ≪大明律≫로의 수렴
3. ≪大明律≫과 다른 法源과의 折衷
4. 새로운 規範의 定立
제3장 ≪經國大典≫ 刑典과 ≪大明律≫
제1절 ≪經國大典≫ 刑典과 ≪大明律≫의 관계 개관
제2절 실체법적 측면
Ⅰ. 특정한 범죄에 대한 刑의 가중
1. 僞 造
2. 强盜의 刺字 및 緣坐
Ⅱ. 尊卑秩序의 유지를 위한 刑의 加重
Ⅲ. 構成要件의 통합 ― 濫刑
Ⅳ. 構成要件의 세분화 ― 亂言
제3절 刑事節次의 구체화
Ⅰ. 決獄日限과 事物管轄
Ⅱ. 拘禁 및 獄具
Ⅲ. 拷 訊
Ⅳ. 收贖對象
Ⅴ. 刑의 執行時期
Ⅵ. 罪囚의 處遇
Ⅶ. 逃 亡
제4절 용어대응
Ⅰ. 長官, 首領官, 佐貳官
Ⅱ. 銀錢代用
Ⅲ. 罪犯准計
1. 罰俸錢
2. 充軍 등의 換刑
제5절 소결—≪經國大典≫ 刑典과 ≪大明律≫
제4장 ≪經國大典≫ 이후의 법령집과 ≪大明律≫
제1절 ≪大典續錄≫을 통해 본 ≪大明律≫의 운용
Ⅰ. ≪大典續錄≫의 편찬
Ⅱ. ≪大典續錄≫ 刑典과 ≪大明律≫
1. 사위와 장모의 간통
2. 各司雜物竊盜
3. 竊盜處罰에 대한 特則
제2절 ≪大典後續錄≫을 통해 본 ≪大明律≫의 운용
Ⅰ. ≪大典後續錄≫의 편찬
Ⅱ. ≪大典後續錄≫ 刑典과 ≪大明律≫
1. 士族婦女로 淫慾恣行 : 姦夫와 함께 絞刑
2. 原從功臣의 형사상 특례 편입
3. 竊盜의 처벌특례
4. 繼母와의 姦通
제3절 ≪各司受敎≫를 통해 본 ≪大明律≫의 운용
Ⅰ. ≪各司受敎≫의 편찬
Ⅱ. ≪各司受敎≫ 刑曹受敎와 ≪大明律≫
제4절 ≪經國大典≫ 편찬 이후의 ≪大明律≫과 國典
제5장 ≪續大典≫의 편찬과 ≪大明律≫
제1절 ≪續大典≫ 편찬과 用律規定
Ⅰ. ≪續大典≫ 이전까지의 法典編纂
Ⅱ. ≪續大典≫의 편찬과정
Ⅲ. ≪續大典≫ 刑典 用律
제2절 名分社會의 深化와 刑事法의 變化
Ⅰ. 身分別 差等取扱
1. 拘禁 및 管轄의 특례
2. 士族犯罪
Ⅱ. 犯分行爲의 처벌
1. 일반적 綱常違反의 처벌
2. 官長에 대한 침해
3. 主奴관계의 확대
4. 尊長의 卑幼侵害
Ⅲ. 復讐殺에 대한 특칙들
1. 復讐의 主體에 대한 특칙
2. 復讐의 범위에 대한 특칙
제3절 謀反大逆에 대한 특례규정
Ⅰ. 搜査․審問절차 규정
1. 謀逆誣告
2. 婦女의 推問금지
3. 謀反大逆罪人의 自服前 殺害
Ⅱ. 緣坐에 관련된 규정들
1. 謀反大逆의 樣態에 따른 緣坐의 특례
2. 反逆 緣坐의 구체화
3. 緣坐로 유배된 罪囚의 처리
제4절 財産犯罪의 規制
Ⅰ. 竊盜․强盜에 대한 규제
1. 結合犯의 處罰
2. 對象에 따른 처벌
Ⅱ. 僞造犯罪의 처벌
1. 印信의 僞造
2. 號牌僞造
3. 私鑄錢
4. 假銀製造
5. 그밖의 僞造犯罪와 유사 범죄
제5절 ≪續大典≫ 刑典과 ≪大明律≫
제6장≪大典通編≫, ≪大典會通≫ 刑典과 ≪大明律≫
제1절 형사제도 운영의 방향
Ⅰ. 法典과 判例集․實務書의 편찬
Ⅱ. ≪大典通編≫, ≪大典會通≫ 刑典과 ≪大明律≫
1. 囚禁 및 訊問과 관련된 규정들
2. 犯分 행위의 규제
3. 殺 獄
제2절 ≪律例要覽≫에 나타난 형사규정들
Ⅰ. ≪律例要覽≫의 사례 분석
Ⅱ. ≪律例要覽≫에 나타난 ≪大明律≫과 國典의 규정들
제7장 결 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