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우리는 기후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구의 평균 온도는 거침없이 상승하고 있고, 그로 인한 물리적, 생태적, 그리고 사회적 영향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류는 그 상승폭을 1.5°C 이내로 저지하는 도전적인 과제를 도출하였다. 동일한 배경에서 우리 정부 또한 2050년에는 실질적 탄소중립에 도달할 것을 선언하였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률-「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마련하였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무수한 과제 중에서도, 2018년 기준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6%를 차지하는 에너지 부문에 대한 개혁이 시급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문제는 특유의 가치 의존성으로 인해 하나의 유일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일 뿐더러 설사 합치된 목표가 제시되었다 하더라도 그 이익의 분산적 특성으로 인해 사회 성원의 집합적 행동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특징을 가진다. 나아가서, 에너지 영역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본다면 그 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인적・물적 요소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여 강력한 경로의존성을 생성하는 까닭에, 외부적 요인에 기민하고 자발적으로 반응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에너지 문제에 대한 법률에 의한 개입이 요구되는 배경이자 에너지법이 부상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다만, 여기에 관한 국내의 논의 대부분이 개별 에너지원의 규제와 진흥 그리고 관련 기술의 개발 등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자칫 오늘날 에너지법이 마주한 전환적 여건에 관한 논의를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여기서 언급하는 에너지법의 전환적 여건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에너지 수급체제의 전환을 지칭한다. 화석연료는 근대 문명의 끝없는 발전을 지탱하였고, 그로 인하여 인간의 활동영역과 수준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장하였다. 이러한 쾌락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기후 시스템의 변화와 그로 인한 직・간접적 영향은 우리의 생각이 틀렸음을 너무나 쉽게 증명해 주었다. 즉 인류가 의존한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는 후회스러울 정도로 파괴적이고 자멸적인 결과를 초래하였고, 우리는 여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이것이 첫 번째 전환적 요청이다.
이러한 경향은 석탄화력발전소의 사례를 통해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50년 탄소중립과 함께 천명된 탈석탄을 구현하기 위해선 현재 건설 또는 가동 중에 있는 민간 석탄화력발전소의 취급을 고민해야 한다. 다만, 여기에는 무수한 법적 쟁점이 자리하고 있으며 탈석탄을 내용으로 하는 두 개의 입법안-「에너지전환지원에 관한 법률안」과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에 관한 법률안」-이 논란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그 속에는 민간 사업자의 재산권, 매몰비용,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일자리 문제, 지역 경제 등의 비용과 함께, 미세먼지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사회적 혜택이라는 가치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즉 탈석탄 문제는 가치의 다발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은 법률을 통한 조정을 요청하지만, 해당 사안의 가치 의존적이고 동시에 가치 다원적 특성은 오히려 법적 매듭지음을 어렵게 만드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 즉 법률의 제・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의회가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의회의 공백 상황을 초래한다. 실제로 위의 법안들이 계류 중이고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상황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의회의 정체와 공백은 국가의 또 다른 기관인 행정부와 사법부에게 기후위기의 실질적인 대응과 에너지 문제의 해결을 요청하게 만든다. 즉 사회적 과제의 해결을 위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행정부에 의한 창발적인 법해석과 행정입법, 그리고 사법부에 의한 위헌법률심사 또는 행정소송을 통해서 정부 및 민간 사업자의 탄소 유발적인 정책・계획 또는 사업에 제동을 거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전술한 에너지 문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입법부가 아닌 행정부와 사법부의 판단을 통해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러모로 논쟁적이다. 특히 삼권분립의 원칙과 민주주의에 입각한 입법부의 우위, 그리고 법의 지배에 관점에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반면, 옹호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는 주장도 존재한다. 기후위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으며, 지구는 우리의 유일한 삶의 터전이다. 이렇듯, 문제의 중대성과 시급성, 그리고 시간적 제약을 고려하면, 의회의 재가동을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삼권분립, 민주주의, 그리고 법의 지배라는 메타적 원칙들을 가능한 한 후퇴시키지 않으면서 입법부의 공백을 수용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이와 같은 입장에 선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이 고개를 들게 된다: “행정부와 사법부는 에너지 문제의 해결 주체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역할과 한계는 무엇인가?” 나아가서, “세 기관의 권한배분의 관계성은 어떻게 설정하여야 하는가?” 즉 에너지법은 더 이상 특정 에너지원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배분을 둘러싼 법규범의 집합이라는 영역을 넘어, 우리 사회가 미증유의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에 맞닥뜨렸을 경우, 어떠한 방식으로 이를 극복해야 하는가라는 사회의 문제해결 방식과 체제에 관한 영역으로까지 범위를 확장한다. 이것이 바로 에너지법이 마주한 두 번째 전환적 여건이다.
이렇듯 탈석탄 문제는 에너지법의 두 가지 전환적 여건을 조명하고, 여기에 관한 고민을 촉발시킨다. 여기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탐구하기 위하여, 본 연구는 주인-대리인 이론이라는 이론적 틀을 채택하여 기후위기 그리고 탈석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삼부의 관계성을 검토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당 사안에서의 입법부의 공백을 확인하였을 뿐 아니라 사법부의 대리인 비용이 행정부의 그것을 상회한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 양 기관 모두 사회적 과제의 해결에 있어서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다. 특히 행정부에 의한 대응은 관료의 포획과 관료제가 가지는 쟁점, 그리고 행정규제의 형식, 수단, 강도(强度)가 초래하는 우려가 존재하는 반면, 사법부는 소송이라는 분쟁해결 과정이 가지는 구조적 한계, 법원의 부족한 민주적 정통성과 인적・물적 역량의 부재는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우리 사회가 가지는 법의 지배, 민주주의와 같은 원칙들을 후퇴시킬 수도 있다. 반면, 행정부가 선제적으로 문제를 포착하고, 여기에 대한 법규범이 창설되기 이전에 예방적으로 대응한다면, 이는 사법부에 의한 사후적 통제가 가능할 뿐더러 의회의 정치 과정을 작동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협력적 삼권분립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탈석탄 문제는 특정 기관의 개별적인 대응과 함께, 삼부의 최적의 조화, 그리고 이를 위한 거버넌스에 관한 고민을 수반해야지만 문제의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함과 동시에, 그것이 규범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행정부의 독자적 규제의 방안으로, 미세먼지 대응을 통한 우회적 규제를 주장한다. 이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동시에 배출한다는 특징에 착목하여 미세먼지 규제를 강화하고, 이로써 석탄화력발전을 시장으로부터 퇴출시키는 효과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높은 수용성, 규제 파편화의 보완, 그리고 지역 맞춤식 규제설정을 허용한다는 장점을 가지기도 한다. 추가적으로, 현존하는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를 통한 해결방안 역시 타진한다. 앞선 행정부 주도의 규제의 정도 등을 설정함에 있어서 독립적인 전문위원회를 활용하는 접근방식은 책임성의 향상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는 다양성과 전문성의 균형, 책임성과 투명성의 확보, 개별 쟁점에 대한 검토의 부재와 같은 과제를 가지는 바, 여기에 관하여 영국의 기후변화위원회와의 비교를 통해 우리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언을 도출하였다.
<목차>
제1장 서 론
제1절 연구의 배경
제2절 연구의 내용 및 구성
제2장 에너지법에 관한 논의의 토대
제1절 왜 ‘에너지’인가
1. 에너지와 문명
2. 에너지의 사회적 문제화
3. 에너지 문제의 양상
제2절 ‘법’을 통한 에너지 문제의 해결
1. 가치 조정문제로서의 에너지 문제
2. 경로의존적 문제로서의 에너지 문제
3. 법을 통한 에너지 문제의 해결
제3절 ‘에너지법’의 개념과 비판
1. 에너지법의 개념
2. 관련 법영역과의 관계성
3. 에너지법의 원리
4. 에너지법에 대한 비판적 논의
제4절 소결
제3장 에너지법의 쟁점: 탈석탄 문제
제1절 문제의 배경
1. 왜 석탄화력발전인가
2. 국내 석탄화력발전의 현황
3. 탈석탄 정책의 흐름
4. 탈석탄의 법정책적 근거
제2절 탈석탄의 법적 문제화
1. 탈석탄의 법적 쟁점: 재산권
2. 가치의 다발로서의 탈석탄 과제
3. 의회의 정체(Congressional Logjam)
제3절 해외 사례의 검토
1. 독일
2. 영국
3. 시사점
제4절 소결
1. 가치 투쟁의 무대로서의 탈석탄 문제
2. 권한 배분의 문제로서의 탈석탄 문제
제4장 탈석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삼부 관계성의 재정립
제1절 분석의 틀로서의 주인-대리인 이론
1. 주인-대리인 이론의 개요
2. 주인-대리인 이론의 역할
3. 주인-대리인 이론의 쟁점
제2절 행정부는 주인인가? 대리인인가?
1. 문제의 소재
2. 행정부의 양면적 지위
3. 행정부의 양면적 지위에 대한 회의
4. 사례: 미국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
제3절 사법부는 충실한 대리인인가?
1.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사법부
2. 현대형(現代型) 소송의 등장
3. 사법부의 제도적 한계
4. 주인-대리인 이론으로 살펴본 사법부의 자리매김
제4절 탈석탄 문제에의 적용
1. 탈석탄 입법안의 검토
2. 가치판단에 있어서의 법원의 제약성
제5절 소결
1. 행정부와 사법부의 제도적 역량
2. 삼부의 상호작용
제5장 탈석탄 문제의 해결방안과 함의
제1절 미세먼지 규제를 통한 해결방안
1. 행정부 주도의 해결방식
2. 환경부의 단일 BM방식
3. 산업부의 석탄상한제
4. 대안으로서의 미세먼지 규제
5.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전제들
제2절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를 통한 해결방안
1. 독립위원회를 통한 문제의 해결
2. 탄중위의 성격과 법적 근거
3. 탄중위의 설립과 구성
4. 탄중위의 기능과 한계
5. 제언: 영국 기후변화위원회와의 비교
제3절 탈석탄 문제가 제기하는 공법적 함의
1. 최적화 입헌주의(Optimazing Constitutionalism)
2. 행정의 우위에 대한 비판과 반론
제4절 에너지법의 진화: ‘전환적 에너지법’의 형성
1. ‘전환적 에너지법’이란 무엇인가
2. 에너지법의 전환적 여건
3. ‘전환적 에너지법’의 형성
제5절 소결
1. 미세먼지 규제
2.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
3. 공법적 함의: 최적화 입헌주의
4. 전환적 에너지법의 형성
제6장 결론
제1절 연구의 요약 및 의의
제2절 연구의 한계 및 향후 전망